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아 전쟁 (문단 편집) === 카이사르의 전쟁 준비 === 갈리아에 머물며 그대로 겨울에 병사들과 함께 숙영하던 카이사르는 1개 군단과 5개 대대의 전멸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국력은 강력하다는 것[* 로마군의 병사 한 명 한명의 무장 수준은 갈리아 귀족들의 무장 수준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실제 갈리아 고위 전사의 무장은 체인메일과 방패, 철제 투구 정도였는데 이는 로리카 하마타 등으로 무장한 로마 군단병의 무장과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게다가 국비로 이들을 훈련시키고 꽤 높은 수준의 월급을 지급해주며 여러 병기를 제공했으므로 1개 군단의 가격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이때문에 로마는 전성기때조차 10개 군단이 넘는 병력을 한 전투에 동원하는 일이 없었다.--내전기에 양쪽 합쳐서 10개 군단을 넘은 적은 많았다--]을 보여주기 위해 3개 군단을 이탈리아에서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3개 군단 중 하나의 군단은 폼페이우스에게 빌리기로 했는데 이것은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우정을 원로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각각 14군단, 15군단, 그리고 폼페이우스에게서 빌린 군단은 1군단으로 불렸으나 나중에 6군단으로 개칭되었다. 14군단의 경우 사비누스와 함께 전멸당한 군단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으로, 여기다가 사비누스 휘하에서 같이 전멸당한 5개 대대를 새로 뽑아 보충했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그 해에 3.5군단을 증강했으며 총 10개 군단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렇게 병력의 수를 늘린 뒤 카이사르는 갈리아 내부의 정보를 계속 수집했는데 이때 라인 강 연안에 있었던 모든 갈리아인들이 카이사르와 대항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들은 게르만족을 불러들여 로마군에게 대항하려고 했고 따라서 이들 사이에 사절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